AI가 일을 대체하는데 사무실은 왜 더 커질까 – 리더가 알아야 할 공간 전략의 변화 2
리더를 위한 오피스 레볼루션 3편에서는 AI 시대에 기업들이 오히려 사무실에 더 투자하는 이유를, 세일즈포스의 5년 시행착오와 한국 기업 사례로 살펴봅니다.
[오피스 레볼루션] 시리즈는 리더분들이 사무실 공간을 성과를 만드는 전략적 도구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획됐습니다. "평당 얼마인가"가 아니라 "이 공간이 우리 조직에 어떤 가치를 만드는가"를 질문할 수 있는 관점을 드리고, 더 효과적인 인테리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1편에서는 사무실이 '비용'이 아니라 '성과를 만드는 전략적 도구'라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2편에서는 구글의 네이버후드 사례를 통해 그 도구가 '집중과 협업이 균형 잡힌 공간'이라는 원리 위에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살펴봤죠.
3편에서 던질 질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지금, 사무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가, 나오라고 바꾸고, 사무실을 절반으로 줄였다가, 다시 늘린 글로벌 기업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시행착오가 답의 단서가 되어줄 것입니다.
세일즈포스는 5년동안 사무실 전략을 어떻게 바꿨나

2021년: 매일 출근하는 시대는 끝났다
2021년 2월, 세일즈포스 최고인사책임자(CPO) 브렌트 하이더(Brent Hyder)는 공식 블로그에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썼습니다.
‘Success from Anywhere'(어디서든 성과를 낸다)는 원격근무 기반 전략의 선언이었습니다.
직원의 절반 가까이는 한 달에 몇 번만 출근하고 싶어 했고, 동시에 80%는 물리적 공간과의 연결을 유지하길 바랐어요. 완전한 재택도, 완전한 출근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를 바라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일즈포스는 사무실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세일즈포스 공식 블로그의 표현을 빌리면, 기존 사무실은 "책상의 바다(a sea of desks)”였습니다. 이 구조를 "커뮤니티 허브"로 재설계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개인 데스크를 줄이고, 그 자리에 협업 공간과 브레이크아웃 존을 늘리는 방향이었죠.
2020년부터 먼저 시범 운영한 시드니 오피스의 결과가 이 방향을 뒷받침했습니다. 각 공간 유형별 활용률을 보면, 협업 공간 중 64%가, 개인 데스크 중 24%가 실제 사용됐습니다.

직원들이 사무실에 와서 실제로 자주 쓰는 건 개인 자리 보다는 협업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출근한 직원은 재택 직원에 비해 동료와 사회적으로 교류한 확률이 19% 높았어요. "사무실의 가치는 책상이 아니라 사람 간의 연결에 있다"는 걸 데이터가 확인해 준 거죠.


샌프란시스코 타워에서도 같은 방향의 변화가 진행됐습니다. 매 층마다 '소셜 라운지'를 두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거점을 만들었고, 3개 층을 하나의 '동네'로 묶는 오픈 계단을 설치해 팀 간 이동과 교류를 유도했어요. 2편에서 다뤘던 구글 네이버후드의 "동네 사이를 잇는 공용 공간"과 같은 원리입니다.
2022년: 출근 명령은 절대 안 통한다
2022년 6월, CEO 베니오프는 뉴욕 행사에서 이렇게 단언합니다.
"출근 명령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Office mandates are never going to work)."
같은 해 9월에는 인사 총괄 하이더가 블로그에 "세일즈포스는 출근 의무화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죠. 그에 맞게 본사 면적 축소에도 착수합니다.
2023년: CEO의 입장 변화
이 시기는 ChatGPT 등장으로 AI 시대가 본격화된 시점이기도 한데요. 2023년 3월, 베니오프는 Kara Swisher 팟캐스트에서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신입 직원은 사무실에서 온보딩 받을 때 경험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낸다. 다만 누구도 강제하고 싶지는 않다. 스타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절대 안 통한다"에서 "강제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무실이 낫다"로. CEO의 언어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본사 오피스는 약 45,000평에서 25,000평으로 약 45% 감소했습니다(2024년 3월 공시 기준). 그런데 흥미로운 건 같은 해에 벌어진 다른 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본사 면적은 줄이고 있었지만, 같은 해 오픈한 더블린 타워에서는 기존 세일즈포스 오피스 대비 협업 공간을 70% 늘렸고, 150명 수용 가능한 강당까지 갖췄어요. 모순처럼 보이지만, 방향은 하나였습니다.
쓰지 않는 면적은 줄이되, 남기거나 새로 만드는 공간은 협업 목적에 최적화하는 것. 2025년 뉴욕 확장의 씨앗이 이미 이때 뿌려지고 있었던 셈이죠.
2024년: 출입 카드 태그와 출근 의무화
결국 2024년 7월, 세일즈포스는 RTO(Return To Office) 정책을 공식화합니다. 영업·워크플레이스 직군은 주 4~5일, 나머지는 주 3일 출근. 그리고 8월부터 미국 오피스에 출입 카드 태그 기반 대시보드를 도입해 직원별 출근 현황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에 "절대 안 통한다"고 했던 그 출근 명령을, 2년 만에 본인들이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출입 카드 태그 수는 올릴 수 있지만, 그게 몰입이나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니까요.
2025년: 책상을 늘린 게 아니다
2025년 9월, 세일즈포스는 뉴욕 타워 면적을 25%(약 2,000평) 확장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원격 선언 > 사무실 축소 > RTO 강화 > 재확장
전략 없이 왔다 갔다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확장 내용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직원 전용 층: 협업·하이브리드 근무 중심 설계
AI 트레이닝 센터: Agentforce 시대 직원 역량 강화
고객 혁신 공간: 대면 고객 경험·시나리오 조율

샌프란시스코 타워에도 같은 맥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대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객·커뮤니티 전용 공간 '오하나 플로어스 빌리지(Ohana Floors Village)'를 2024년 겨울에 오픈했고, 시드니 타워 50층에는 고객과 함께 문제를 풀고 미래를 설계하는 '이노베이션 센터'를 만들었죠.

세일즈포스 부동산 총괄 레리나 불찬다니(Relina Bulchandani)는 이 확장의 방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자율 AI 에이전트의 부상과 함께 새로운 업무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오피스 공간에 대한 비전은 인간과 에이전트, 로봇이 나란히 일할 수 있는 공간과 경험을 만드는 것입니다.
"돌아온 직원을 앉힐 자리"가 아니라,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위한 공간"으로 목적 자체를 재정의한 겁니다.
5년 사이, 사무실의 성격이 세 번 바뀌었다
1단계: 책상만 가득한 사무실 (팬데믹 이전)
2단계: 협업 허브 (2021년 데스크를 줄이고 라운지·브레이크아웃 존 확대)
3단계: 목적형 공간 (2025년 AI 트레이닝, 고객 혁신, 팀 협업 각각의 전용 공간)
1단계에서 2단계는 "책상을 줄이고 라운지를 늘렸다" 수준이었습니다. 2단계에서 3단계는 차원이 달라요.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종류 자체를 새로 정의한 겁니다. "협업 공간"이라고 뭉뚱그리는 게 아니라, "AI 교육은 여기서, 고객 대면은 여기서, 팀 협업은 여기서"라고 용도를 특정한 거죠.
AI 시대의 역설 그리고 새로운 오피스 상(像)
AI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사무실 투자가 늘어나는 이유
세일즈포스만의 이야기일까요? 숫자를 보면, 업계 전체의 흐름입니다.
뉴욕에서 AI 관련 기업의 오피스 신규 임대 면적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약 7,400평이었던 임대 면적이 2024년에는 약 11,600평, 2025년 3분기에는 누적 약 13,600평을 기록했죠.

샌프란시스코는 더 극적입니다. AI 기업이 차지하는 오피스 면적이 2020년 약 56,000평에서 2025년 약 246,000평으로 5년 만에 4배 이상 늘었어요.
OpenAI 한 회사만 봐도, 2023년에 약 14,000평을 임대한 이후 2년 만에 미션베이 지역에서만 28,000평 이상을 사용하고 있고, 마운틴뷰에도 별도 캠퍼스를 확보했습니다.
직관과 반대되는 현상이죠.
AI가 일을 대체하면 사무실도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논리는 명확합니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가져갈수록, 사람에게 남는 일의 성격이 바뀝니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AI가 더 잘하지만, 그 보고서를 놓고 "우리의 다음 한 수는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조율하는 일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사람이 직접 모여야 합니다.
AI가 사람의 일을 줄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모여야 하는 이유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모임"의 질을 결정하는 건 줌(Zoom) 링크가 아니라 물리적 공간이에요.
그런데 왜 출근 정책만으로는 안 될까
세일즈포스의 여정에서 한 가지 빠진 퍼즐이 있습니다. 출입 카드 태그로 출근을 추적하고, 공간의 목적을 재정의했다고 해서, 직원이 정말로 몰입하며 일하게 되는 걸까요?
전 세계 132명의 기업 부동산(CRE) 리더를 대상으로 한 리스만 인덱스의 2025년 보고서 가 이 질문에 답합니다.
97%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운영 중이고, 57%가 조직 차원의 출근 의무화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RTO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답한 리더는 3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아직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죠.
원인은 간단한데요.

소음, 온도, 집중할 공간 부족, 불편한 동선. 이 기본기조차 안 되는데 "출근하세요"라고 하는 곳이 아직도 많습니다.
세일즈포스 CEO 베니오프는 "출근 명령은 절대 안 통한다"고 했다가 결국 출근을 명령했죠. 동시에 뉴욕 타워를 확장했습니다. 사람들이 일하러 오고 싶은 공간을 먼저 만든 겁니다.
한국 기업은 어떨까
한국 기업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보입니다.
화승코퍼레이션은 부산 본사와 별개로 서울에 거점 오피스 형태의 사무소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계열사와 외부 손님, 본사 출장 인력이 한데 모이는 공간이라 "다양한 목적과 형태로 공간을 사용하는 분들을 모두 수용하려다 보니 가변성에 초점을 두게 됐다"는 게 사무 환경 담당자의 설명이에요. 본사와 거점에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세일즈포스의 거점 전략과 결이 비슷합니다.

[참고]
출근 명령 전에 출근 이유를 설계하라
1편에서는 "공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2편에서는 구글 네이버후드를 통해 공간을 어떤 원리로 설계해야 하는지 살펴봤고요. 3편에서 확인한 건, 왜 지금이 그 투자를 해야 할 타이밍인가입니다.
세일즈포스가 5년간의 시행착오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유연성
원격 선언 > 축소 > RTO 강화 > 재확장. 5년 사이에 이 변화를 겪은 회사입니다. 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무실을 다시 지을 수는 없으니, 용도 전환이 가능한 가변형 구조가 필수입니다.
2. 사무실에서만 가능한 경험
시드니 오피스 데이터가 말해주듯, 직원들이 사무실에 와서 실제로 쓰는 건 책상(24%)이 아니라 협업 공간(64%)이었습니다. "이 일을 집에서도 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공간의 용도를 걸러내야 합니다. 집에서도 되는 일을 위해 출근시키면, 직원에게 통근 시간이라는 비용만 지우는 셈이에요
3. 집보다 나은 환경
리스만 10점 차이를 먼저 줄이지 않으면 위에서 언급한 유연성, 대체 불가능한 경험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조용한 집중 공간, 쾌적한 온도와 조명, 소음 제어, 식사와 휴식 옵션. 이런 기본기를 집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모든 공간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사무실에 몇 명을 출근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출근할 이유가 있는 사무실을 만들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공간 투자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피스 레볼루션> 시리즈 다음 편에서도 리더의 공간 전략을 돕는 새로운 시각을 이어가겠습니다.